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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메뉴 등장

잡담

by bba-bann 2020. 7. 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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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친구에게 날라온 호들갑톡

 스트레이키즈? 이름은 들어봤다만 노래도 들어본 적 없고 얼굴도 알지 못했다. 요즘에야 원체 A급 아이돌들만 조명되는 느낌이니까 그랬을 수도 있고. 여하튼 아이돌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는 친구에게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오더니, 있는 호들갑은 다 떨면서 뮤비를 꼭 보랜다. 평소에도 아이돌 뮤비 산업에 대해서는 감탄하는 편이었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 성격이었던 나. 친구의 성화에 등떠밀려 신세계를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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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비율 돌려줘요

 처음에는 내 컴퓨터가 고장났나 했다. 이게 비율이 얼마야. 영화관 아이맥스도 가로로 이렇게 길지는 않겠다. 영상이 하루에 백 개고 천 개고 올라오는 유튜브 시장에서 이런 비율은 정말... 짜릿하다! 마치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의 인스타그램 프레임을 볼 때 현대인이 느끼는 신선함이 이번에는 극단적인 가로 길이에서 느껴진다. 이 생경한 비율에 눈동자를 어디로 둬야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즈음, '神메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나게 많은 재료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간다.

방역자들, 군악대. 셰프, 카레이서... 근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처음에는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도입부와 함께 모든 소재가 뒤죽박죽 섞여버린다. 군악대, 셰프, 카레이서 같은 직업군은 우리에게 신선하지만 고정된 프레임으로 다가온다. 셰프하면 이선균씨가 '봉골레 파스타'하며 거칠게 주방을 호령하는 모습이라던지, 군악대라면 화려한 트럼펫 소리와 군무가, 카레이싱하면 눈앞을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스포츠카와 굉음이 생각나기 마련인데, 주방에 군악대가 나타나는 순간 우리 머리는 잠깐 오류를 겪은 것 마냥 멈췄다가 상황파악을 시작한다. 

 새빨간 조명을 받고 춤을 추는 검체원들.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를 나타내는 듯한 격렬한 움직임과 공사판 배경, 그리곤 이어서 스포츠카 레일 위에 여고생 무리까지 등장하면서 영상은 종잡을 수 없음의 끝으로 흘러가는데...

 영상의 색감이나 편집이 훌륭하긴 하지만, 가장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은 역시 카메라 워킹이다. 춤선에 따라 기울기가 미세하게 비틀리거나, 멤버들 사이를 이동하면서 완벽하게 정지했다가 또 물흐르듯이 다른 멤버를 찾아가는 살아있는 듯한 카메라 워킹. IP파워가 없는 그룹이라서 그런지, 아이돌 자체를 보여주기보단 영상 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내고자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뭐가 다른가?

NCT 127 '영웅(英雄; Kick It)'

 4개월 전 등장한 'NCT'의 <영웅> 뮤비에서 감탄한 이후로는 비교적 빨리 다른 아이돌 뮤비에서 감탄하게 됐다. NCT의 영웅은 영상 내내 뚜렷한 골드-블랙의 칼라칩을 고수하고, 동양 중에서도 중국 소림사의 감성을 제대로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신메뉴>는 다양한 메타포의 교차. 낯설게 하기와 디테일한 카메라워킹으로 작품성을 증명했다. 이런 방식의 뮤직비디오 제작은 뮤비를 핸드폰을 넘어 아이돌을 보여줄 수 있는 '쇼룸'을 넘어 하나의 완결성있는 작품으로 생동하게 한다. <신메뉴>와 <영웅>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이 둘만이 가지고 있는 생동감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바로 두 곡이 '사랑'이나 '남녀'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요즘 노래, 사랑 노래밖에 없다는 뻔한 갈증은 엔터산업에서 오래된 고질병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사랑 이야기하는 게 다 잘 팔린다. 도서에 자기계발서가 있다면 노래에는 사랑노래가 있는 셈이다. 그만큼 사랑노래에 대한 수많은 레퍼런스와 성공/실패 사례가 있다. 뻔한 구도와 뻔한 의상만 도전하게 되는 상부의 지시가 있을 거고, 그 아래서 또 새로운 걸 찾아보겠다고 노력하는 디자이너들의 고통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웩.

 하지만 <신메뉴>나 <영웅>은 조금 틀리다. 대체 이 노래 레퍼런스를 어디서 따야할 지 몰랐겠지. 나같아도 이런 주제의 노래를 만난다면 신나게 디자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일무이하고,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과 욕심이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그 결과물로 이런 사막에 오아시스같은 멋있는 뮤직비디오들이 탄생하는 게 아닐까.

 디자인에 관심있는 사람으로써 아이돌산업은 한국 디자인 산업의 중요한 뼈대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퀄리티와 확장성이 전례없이 커다란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는만큼 나도 관심을 가지고 아이돌 산업을 바라보는 산업 자체의 팬이다. 하지만 요즘, 솔직히 '뮤비를 보면 소속사를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아이돌 뮤비에 질리기 시작했다. JYP의 얼토당토않은 공간배경. SM의 갱스터감성 뚜렷한 소재와 톡톡튀는 칼라칩의 향연 등이 너무 일목요연한데다가, 너무 화려한 뮤직비디오가 범람한 나머지 반짝이는 의상과 커다란 무대, 통통튀는 색감 등 '생각없이 만들어지는 화려함'만으로는 자극할 수 없는 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엔터테인먼트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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