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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야 완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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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a-bann 2020. 9. 2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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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라이언 홀리데이

Before : 탁월함

 나는 탁월함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탁월함이란 어떤 길을 능숙하고 쉽게 갈 수 있도록 이미 개인에게 내재되어있는 재능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예체능이라는 분야에서는 이 탁월함이라는 게 눈에 띄게 드러난다. 결국 ‘노력한 것이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감성에 젖은 지표들을 버리다보면 남는 것은 결국 결과물과 그 안에 얼마나 탁월함이 들어있는지 뿐이다. 탁월함이 내재되어있는 자의 결과물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탁월함이 없는 자의 결과물은 그저 그렇다.
 탁월함 순서대로 줄을 세우자면 나는 바닥도 아니고 꼭대기도 아니다. 어중간한 위치에 속해있다. 나는 내 위에 있는 사람들의 탁월함이 너무 부러웠다. 뭔가 조금만 해도 분위기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이라던지, 특정 분야에서 너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던지....
 그런 사람들 속에서 뒤섞이다 보니까, 어느순간 나에게도 탁월함에 대한 집착이 시작됐다. 탁월함에 집착하다보면 사람이 조급해지고 피폐해진다. 사실 모든 집착이라는 게 그렇지만. 이런 조급하고 피폐한 상태의 내가 좋은 대표랑 좋은 팀원들을 만나, 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하게 되어 1년 반 정도 회사에 몸담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일을 오래하는 거, 이례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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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나 : 내 선에서 납득되지 않으면 그대로 그만뒀다. 심지어 어떤 동아리 지인은 내가 오래 일 할 정도면 정말 믿을만한 회사인 거라며 합류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After : 꾸준함

 솔직히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나에 대해, 내 생각에 대해, 내 능력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처음 회사 다녀보는 주제에) 근데 막상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까, 그 때 그 때 시간에 쫒겨 내놓는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탁월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누구든 조금만 노력하면 내가 한 만큼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탁월함이 없는 나는 뒤에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나를 쫒아올 수 있고, 심지어는 앞질러 갈 수 있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야근도 하고, 데드라인을 넘기기도 하고, 짜증도 내면서 투닥거리며 일 년 반을 지냈다.
그리고 어느날, 새로 발표를 할 일이 생겨서 지금까지 회사에서 한 일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정리해야했다. (다음 날 발표라길래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 새서 만들어줬더니만, 발표가 미뤄졌다 - 인생 최대의 분노를 느낌) 근데 이 자료를 만들다보니까, 어느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거.


‘ 어? 이 분야 나보다 잘 아는 사람 별로 없겠는데? ‘


 내가 만들어낸 작업들이 탁월했던 건 아니다.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어디가서 멋있게 보여줄 게 없긴 하지만, 그런것들을 밟고 지나온 내 위치는 지금 당장 누가 노력한다고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결과물은 따라올 수있지만, 나라는 사람은 따라올 수 없게 된 거다. 누군들 완벽하고싶겠지만, 역설적으로 본인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야만 꾸준히 버티게 되고, 꾸준히 버텨야만 비로소 완벽해진다. 완벽하지 않은 꾸준함만이 완벽을 만든다.

2.

나는 슬럼프에 자주 빠지는 편이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지는 꼴. 비유하자면 엄청나게 압축된 고효율 배터리가 엄청 빨리 충천되었다가 빠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런 내 성향을 너무 잘 안다. 그럴때마다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노트북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앞에 있는 북카페를 간다. 커피는 끊어서 요즘은 티 쪽을 정복하고 있는데, 시원한 민트티같은 거 예쁜 잔에 먹다보면 뭔가 영국 귀족이 된 것 같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하튼, 여러 슬럼프를 겪어보니까 이 슬럼프,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말했던 ‘꾸준함’ 속에서 오는거다. 애초에 꾸준하게 하나를 안 하면 슬럼프가 올 일이 없다. 결국 꾸준함과 탁월함 사이에는 슬럼프가 필연적으로 껴있는 거고. 그렇다면 슬럼프가 오지 않는 건 그것대로 문제일 수 있다. 꾸준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진짜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는 일이거나.
 꾸준함과 탁월함의 관계를 몰랐을 때는 이걸 ‘질렸다’고 판단했다. 이제 할만큼 했고 질리기도 했으니 다음 일을 찾아야겠다고 건너뛰기 십상이었다. 지겨운 일을 하지 않는 것 = 패기롭게 결정하는 것, 내 열정대로 사는 것이 20대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니까 슬럼프가 오면 바로 그만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나 아직 어리니까지겨운 일 억지로 할 필요 없어!’
 하지만 꾸준함이라는 게 탁월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 이후로부턴 귀신같이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았다. 외려 슬럼프가 온다는 것은 내가 꾸준하게 뭘 잡고있구나 하는 반증이다. 심지어 슬럼프이 해결되기만 한다면 그 꾸준함을 더 오래 가도록 만들어준다! (이 때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좀 필요하다. 좋은 사람들과 있어야 슬럼프를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뭔가를 오래 잡고 있는 일이 익숙해졌다. 짧게 끝날 일이라면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집과 고집, 누군가는 미련 또는 집착, 누군가는 우직함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꾸준함이다. 또 다른 말로는 존-버라고도 하고. 비트코인같은 한 탕에 존버하지 말고, 나 스스로에게 존버하는 거. 그게 책에서 말하는 Stillness와 조금 맞닿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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