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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아틔움

커리어

by bba-bann 2020. 7. 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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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아틔움은 2018년 3월, 벤처경영학과 내 '창업론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강의에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은 진짜 창업을 하는 것 처럼 팀 과제로 진행되고, 수업보다 실습을 강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창업지원단의 지원으로 팀마다 약 100만원 정도의 실습비가 제공되고, 팀 내에서도 최소 50만원의 자본금을 내야했죠.

 사실 저희 팀이 처음부터 예술과 관련된 작업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약 한 달 정도는 '의약품 리뷰 서비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의가 진행될 수록 아이디어에 대해 확신이나 흥미가 떨어져갔죠. 우리 중 누구도 의약품따위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게 한 달의 노력이 무산되고 다시 칠판위에 아이디어를 적어내려가는 브레인스토밍 단계로 돌아갔습니다.

 

 '이게 돈이 될 지는 모르겠는데...'

 

 아틔움의 메인 아이디어는 제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서비스인 '아큐라'라는 프로토타입에서 시작됐습니다. 누구나 큐레이터의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런 플랫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본 가상의 앱이었습니다. 어도비 xd를 처음 접했던 제가 '이건 신세계야!'하고 외치며 끄적끄적 처음 만들어본 이미지에 불과했지만, 언젠가는 만들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숨겨둔 아이디어였죠. 게다가 이 아이디어가 돈이 될 수 있는지는 저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팀플에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조심스럽게 꺼낸 아이디어에 많은 친구들이 동의해줬습니다. 다들 예술에 관심이 있는 편이기도 했고.

 

(좌)2017년 정도에 한 장만 떡 만들어놨던 이미지. (우)성실하게 모았던 아틔움 회의록

 

 어쩌다보니 학점도 괜찮게 받았는데, 만들어놓은 걸 그냥 날려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에 종강하자마자 지원해봤던 예비창업패키지에 덥석 최종 선정이 되어버렸습니다. 팀 가산점을 받아서인지 그 금액도 대학생인 저희로서는 겁이 날 정도였죠. 그렇게 아틔움은 물흐르듯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동안, 열심히 하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들 대학생활과 다른 일들을 병행하느라 일주일에 두 번정도 회의하는 게 전부였지만 다들 처음만들어보는 앱이었고, 처음 운영해보는 회사였던만큼 많이 배우고 절뚝이면서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첫 회사, 첫 앱을 만들어보면서...

 스타트업 창업의 묘미는 역시 맨땅에 헤딩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대학생 창업이라면 이런 기회가 더더욱금쪽같이 다가올 것이고, 우리 또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배웠고, 또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 것 같아요. 아틔움을 통해 얻었던 교훈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아니면 빨리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앱을 만든다는 것이 곧 창업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앱은 유저를 모으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 회사가 앱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약간은 순진한 생각이었는데, 앱이라는 것은 일단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유저에게 뛰어난 사용성과 접근성을 제공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앱을 만들면 유저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은 유저를 통해 어떤 것이든 bm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졸업전시에서 만들어보는 프로젝트성 앱과 창업이 다른 게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창업의 근본이 사용자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조금 다릅니다. 수업에서 교수님들이 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업을 논할 때, 사실 조금은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라는 게 꼭 그걸 바라보고 뭘 해야만 나오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믿었고요.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창업의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저는 자신있게 '수익성'이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돈만 보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창업'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면 그게 확실하든 확실하지 않든, 적어도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규정이 무조건 포함되어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앱을 만들고 사람이 많이 오면 돈이 되겠지!하는 생각도 말이 안된다는 것도 명심해야합니다. 당연하지만, 몸으로 맞서보기 전 까진 쉽게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 스타트업에서 그건 별 거 아니라는 것.

팀을 연결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혼자 해내는 것이 멋있어보였습니다. 혼자 척척 해내고 방법을 찾아내고, 수행까지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하면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곧 '별 거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스타트업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걸 혼자서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다른 곳이 삐걱거리기도 했고, 실제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었구요. 실제로 개발자분들과 이야기하다보니 기획과 디자인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pm의 역할이 막대하다는 걸 알았고, 오히려 디자인에 쏟는 시간보다 이걸 어떻게 정리하고 전달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경험은 다른 회사에서 개발자들과 협업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게 해줬습니다. 이번에는 개발자분들이 친화적으로 느끼는 jira 협업툴을 사용하면서, 기능단위 개발 문법인 걸킨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걸킨으로 작성하다보면 기획도 더 탄탄해지고, 만들어야하는 디자인 페이지나 컴포넌트들도 명확하게 정리되는 것 같아 효용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좌)개발 방향과 디자인 규격을 알리기 위한 별도의 페이지 (우)개발문법인 걸킨을 통한 백로그 작성

 

앱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과 개선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

작게 뽑아서 크게 만들어라

 아틔움은 출시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앱을 처음 기획하고 만들어보는 것이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첫번째 출시하는 앱에 엄청나게 많은 기능이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앱은 무겁게 움직였고, 생각보다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한 부분들의 나사가 하나 둘 빠져있었습니다. 6월에 앱을 디자인하던 나와 11월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고, 11월과 3월의 나도 조금은 발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장장 6개월에 걸쳐 출시된 앱은 여기저기 고치고싶은 부분이 많았고, 그 과정을 '아틔움 대청소'라고 불렀습니다. 그걸 하나 둘씩 고치는 과정은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지금 후회하는 점이라면 애초에 작은 앱을 출시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무조건 이상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왜 자취방도 엄청 더러워지기 전에 하나씩 치우면 더 수월하고 빠르잖아요. 거대한 앱은 그렇게 처리할 수가 없어서 효율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발전하는 아틔움의 모습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느끼는 것은 다르다

몸 담고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라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아틔움을 다같이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돈이 안되는 사업이라는 얘기를 들을까봐. 그래서 일부러 꽁꽁 숨겼습니다. 어디가서 대놓고 아틔움을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보단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아틔움을 접어야겠다고 서로 생각하게 될 무렵에서야 우리는 미술관에서 일하시는 큐레이터 한 분을 만나러 갔습니다. 

 자기만족적인 예술 생태계에서 자본주의의 빈틈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씀. 이미 구조가 강하게 규정되어있다는 이야기. 수많은 회사가 비슷한 사업을 벌리고 망해갔다는 사실. 단순히 그런 이야길 듣고 팔랑거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적어도 이 이야기를 알고 일을 했으면 조금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왜 이제서야 들으러 왔을까 하는 후회가 있긴 합니다. 

 

무엇이 바뀌었나

 감성적인 이야기를 글로 잘 적는 편은 아니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신감이 없는 편입니다. 특히 디자인 능력에 대해서 자격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원체 잘하는 친구들이 많기도 하고, 요즘 디자인을 하는 일반인도 늘어나는 와중에, 이런 나를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무서움이 항상 엄습합니다.

 그래서인지 자기방어를 위해 정말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민하고 냉철하게 해야만 남들이 디자인을 잘하는 만큼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디자인은 못해도 일은 잘 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했구요. 그리고 그런 자기방어가 밖으로 튀어나올 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나 스스로의 서투름은 인정하지 못하고 '퀄리티'와 '일'이라는 단어 뒤에서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내가 디자인으로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해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1년동안 꾸준히 했던 일들에 대해서 회고를 하고 있자니, 나는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틀렸었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나는 내가 자만할만큼 잘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매 순간 서툴었던 것들을 방어하려고 했구나,하는 생각이듭니다. 

 아틔움은 실수와 고민, 그리고 성장을 진득하게 함께해준 친구같은 앱이고, 또 이걸 같이 만들어갔던 사람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잘하고 싶다고, 잘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욕심에서부터 흘러나온 서투름과 오만에 대해 미안합니다.

 

768명의 인스타 팔로워 여러분,

946명의 앱 유저분들,

처음부터 함께했던 다른 팀원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해준 6명의 팀원 모두에게

아틔움이 충실한 시간으로 남았기를 바랍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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